서울시립미술관은 동시대 한국미술 대표작가 연례전(2021년 이불, 2022년 정서영, 2023년 구본창)을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다. 올해는 건축,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요소를 활용하여 사회적 구조와 그 안에 내재된 기억, 역사, 심리적 흔적의 관계를 탐구하는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그동안 국제적인 활동에 비해 국내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작가의 첫 미술관 대규모 개인전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전시는 작가가 2017년부터 천착해온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을 중심으로, 디자인, 평면, 영상, 움직임, 출판 등 다채로운 신작으로 구성된다. 다감각적인 전시의 구성은 근대와 식민이라는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의 서사와 함께 추상화된 구조와 체계로 제안한다. <표해록(A Record of Drifting Across the Sea)>은 20세기 초 구 조선에서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미등록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태평양을 횡단한 많은 초기 이민자들의 서사를 다방향으로 직조하는 프로젝트다. 역사 기록 속 부재한 이들의 서사를 통해 제도와 지식의 관계를 탐구한다. 표류지로서의 하와이라는 상징적 공간이 펼치는 수많은 갈래의 길을 따라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새로운 전시의 문법을 구사한다. 전시 기간 동안 변화하는 구성을 통해 앎의 형성에 작용하는 몸과 정보의 관계에 주목한다. 전시가 진행되면서 작품과 정보는 갱신되고, 제작 과정의 부분은 노출된다. 관객은 완성된 장면의 감상자에서 한 개인(작가)의 사유가 (작품으로) 형성되는 과정의 목격자가 된다. “경험”과 “목격”을 강조하는 전시의 방식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앎을 형성하는 인간의 경험에 대한 비유이자, (역사적) 사건에 접근하는 복합적인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표해록>은 2021년 광주비엔날레 GB커미션을 통해 처음 선보인 후, 2022년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3년 네델란드 반아베미술관 개인전, 2024년 독일 ZKM 개인전(11월 개막 예정)을 통해 확장과 변주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변주하는 작업의 양상을 적극 반영하여, 전시 공간 일부를 작가의 편집실이자 스튜디오로 상정한다. 이 공간에서는 영상, 글, 대화, 소리, 움직임이 교차하며 하나의 작품을 구성해 갈 예정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작가의 작업 과정(의미화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전시는 다수의 신작 가운데 <표해록>의 두 번째 비디오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2023)를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전시는 사전 예약 없이 관람이 가능하며,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도슨팅 앱을 통해 음성 작품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전시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