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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근원적 탐구, 감성적 사유의 조형세계

손일정 작가 | 2013년 10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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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10월의 오후,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손일정 작가의 아뜨리에를 찾았다. 작업실 겸 아담한 갤러리로 꾸며진 공간에는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들로 채워진 가운데, 자연의 찬란한 빛을 머금은 나무의 형상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난 8월, 종로구 낙원동 갤러리엠에서 ‘나무그늘전’을 열었습니다. 열기 가득한 여름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픈 마음에서 기획한 것이죠. 나무는 풍성한 잎을 뻗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처를 만들어 줍니다. 나무그늘에 앉아 있노라면 뜨거운 태양의 열정, 자연의 생명력, 솔솔 부는 바람의 여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 작가는 ‘나무그늘전’을 통해 무더운 여름날 나무그늘의 청량감에 주목하고, 나무 그늘의 소중함과 여름 나무의 아름다움,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원초적 생명에 대한 찬미(讚美)
손 작가의 예술적 영감은 자연에서 시작된다. 그는 ‘거대 생태계 안의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주목하며, 그들이 동반자의 마음으로 숲을 바라볼 때, 나무의 섬세한 손길과 더불어 오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울창한 숲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푸른 잎사귀와 반짝이는 햇빛이 어우러져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든다. 향긋한 풀냄새는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불러일으키며, 상쾌한 바람은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킨다”고 표현했다. 
그의 화면은 감각적이며 개성이 두드러진다. 정적이면서도 생동하고, 우아하면서도 화려함이 돋보이며,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추상성이 표출된다. 또한 정지된 화면이 아닌,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의 잔상(殘像)까지 담아내어 찰나의 순간을 각인시키듯, 강렬한 붓터치로 임팩트(impact)를 준다. 색채의 향연 속에 저마다 고귀한 생명의 빛을 더하는 대상들은 손 작가만의 특질적인 조형언어로 재탄생되고 있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 미술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한쪽에 비켜서서 흐르는 물줄기만 바라보고 있었죠.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던 학창시절도 지났고,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떠오르던 정열도, 두렵고 아프던 감정들도 흘러갔습니다. 이제는 흘러갈 것들을 모두 흘려보내고 가만히 그 물줄기에 손을 담가 봅니다.” -작가노트 中
 
그림을 향한 진한 향수, 새로운 도약
대전 출생인 손 작가는 일찍이 미술적 재능이 돋보였다. 학창시절, 각종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소질을 인정받으며 자연스레 화가를 꿈꾸었고, 홍대 미대를 진학했다. 대학시절, 앵포르멜(Informel)에 심취해 즉흥적인 조형성을 추구하기도 했으며,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에 빠지는 등 자유롭게 예술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손 작가는 대학원 졸업 후 결혼을 했고, 5년간의 강사생활을 뒤로 하고 화실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하지만 늘 ‘작가’에 대한 가슴 속 미련을 놓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간절해졌다. 이윽고 그는 중년의 나이에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손 작가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나무’를 화폭에 담았습니다. 애정과 정성이 담긴 종이로 생명력을 간직한 나뭇잎을 표현했죠. 촉촉한 종이로 스며든 염색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색으로 구성되고, 감각적 이미지로 창조됐습니다. 나뭇잎의 인위적이지 않은 형태와 다양한 색은 서로 다른 생명체가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의 섭리를 반영한 것입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를 포용하는 자연의 나무에서 휴식을 얻고, 기쁨을 얻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라며 작품 세계를 소개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 53x53.jpg

화가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따스한 감성으로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손 작가의 ‘나무’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휴식처이자, 메마른 가슴을 다독여주는 위로와 격려의 손길과도 같았다. 손 작가는 “화가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근원적인 자연의 미(美)를 탐구하면서, 내 안의 욕심을 모두 비워내고, 담백하면서 편안한 작품을 하고 싶다. 또한 다시 참여하게 된 ‘홍익루트전’을 통해 전시활동도 활발히 할 예정이다”라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지난 2일부터 영등포 타임스퀘어 ‘나무그늘갤러리’에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테마로 손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전시는 10월 한 달간 열릴 예정이며, 가을에 맞는 따뜻한 작품이 주를 이룰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은은한 커피향 속 자연의 향기를 찬연히 빛내며, 따뜻한 휴식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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