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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PSD, 루앤페(LU&FE) 김은정 디자이너 | 2014년 01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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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인터뷰였다. PSD(Personal Styling Designer)를 국내 최초로 정착 시킨 루앤페(LU&FE)의 김은정 디자이너는 지난 10여 년의 시간을 떠올리며 때론 환한 웃음을, 또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두 다리로 처음 걷듯 불안했던 사업초기부터 마라톤을 할 정도로 튼튼해진 현재의 크리스티앙 PSD와 루앤페가 존재하기까지 그녀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널 지원 할 수 없다. 당장 사업 접어! 어떻게 할 것인지는 네가 결정해라. 시간은 이틀이야. 만약 사업을 하겠다면 넌 우리 가족이 아니야. 결정해! 그리고 미안하지만 오빠는 재벌이 아니야.”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09년. 당시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활동하던 그녀의 친오빠는 루앤페(초기 루페) 사업초기부터 6년여 간 여동생인 김은정 디자이너를 물심양면 도와줬다. 하지만 손익을 따지지 않고 고가의 의류만 생산하는 루앤페의 경영상황에 대해 최종 점검한 뒤 ‘사망선고’를 내렸고, 더 이상의 운영은 적자만 키운다는 결론에 따라 동생 김은정에게 냉철한 결정을 요구했다. 단 이틀의 시간이 김은정 디자이너에게 주어졌다. 그동안 투자한 자금만 해도 기 십억 원, 디자이너가 옷을 디자인하는 것과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하루…, 이틀…. 고심 끝에 김은정 디자이너는 “계속 하겠다”고 선언했다. 팀원은, 아니 동료라고는 자신을 포함해 단 세 명인, 이 영세한 의상 디자인 회사인 루앤페를 그녀는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때를 회상하며 김은정 디자이너는 “당시, 기업 합병 전문가로 활동하셨던 오빠가 보셨을 때, 아주 작은 회사였지만 여동생이 한다는 것만 믿고 도와 주신 거였어요. 하지만 손익은 아랑곳없는 뻔히 보이는 적자경영을 더 두고 볼 수 없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빠의 깊은 뜻이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를 없애려면 얼마든지 오빠가 할 수 있었거든요.”라며 그 결정이후 소원해진 오빠를 떠올리며 말끝을 떨었다. 같은 꿈을 가진 동료들을 두고 혼자 떠날 수 없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의류 디자인 회사를 계속 경영하겠다고 결정한 뒤, 철저하게 혼자가 된 그녀에게 바로 밀물처럼 닥친 문제는 자금의 확보였다. 오빠의 매운 일침 뒤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디자이너의 이상만 쫓던 루앤페의 현실이 김은정 디자이너의 눈앞에 펼쳐졌다. 다행이었던 것은 사업 초기부터 고객에게 좋은 의상 작품을 선사했고 만족도가 높아 호평을 받은 점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할인행사를 문자로 알리자, 네 시간 만에 몇천만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또 불필요한 생산을 피하며 기존의 소장 작품과 판매 가능한 보유의상을 VIP고객에게 판매해 한 달을 넘겼다. 김은정 디자이너는 “자금 압박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한 달은 넘겼지만,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한편으론 그동안 자금지원을 했던 오빠의 그늘을 벗어나 혼자(루앤페)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어요.”라며 만감이 교차했던 4년 전을 떠올렸다.
 
PSD(Personal Styling Designer)의 전설이 되다
그렇게 버티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지속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정상화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던 루앤페 김은정 디자이너는 대학시절 따로 공부한 미술과 메이크업·스타일링을 접목해 그 유명한 PSD를 탄생시켰다. 그녀는 “고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성·제안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고객과의 첫 미팅 시, 헤어, 의상, 슈즈까지 컨셉을 정한 후, 이미지 메이킹과 의상디자인, 의상자체제작과 스타일링(헤어·메이크업·악세서리·피부관리 등)을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포괄적으로 해 드리는 것이지요.”라고 소개했다. 국내 최초로 김은정 디자이너가 PSD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착시키는 순간이었다. 이후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이때부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루앤페에게 일어났다. 굵직한 주문이 들어오고 고객이 폭주해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 새벽 4시부터 그날 밤 12시, 1시까지 하루 50여 명이 넘는 고객을 상대했고, 1년이 넘는 기간을 동료들과 미친 듯 일했다. 매출도 몇배 상승하며 그동안 마음속에 안고 있던 부담감을 한시름 덜게 된 김은정 디자이너였다. 오빠로부터 루앤페의 사망선고를 받은 지 불과 1년 넘는 기간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 뒤엔 김은정 디자이너가 걸어왔던 독특한 이력이 도움이 됐다. 김은정 디자이너는 신비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전공이 의상 디자인은 아니었다. 국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예체능 계열을 가고 싶었지만 유전적(?)으로 머리가 좋아 공부를 권유했던 집안 분위기에 인문계열을 선택했다. 하지만 피는 속이기 힘든 법 아닌가. 그녀의 어머닌 우리나라 의상의 전설적 명성을 가진 ‘노라노’ 패션스쿨의 최초 기수로서 양복 계통에 종사한 이력을 가졌었고 딸인 김은정 디자이너가 어머니의 성향을 이어 받은 듯하다. 국문학과에 입학하고 6개월 후부터 미술을 하겠다고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쳤다. 김 디자이너는 “입학하자마자 6개월이 지난 후부터 미술을 배우기 위해 공부했어요. 순수미술부터 시작했고, 하다 보니 컴퓨터 그래픽까지 하게 됐어요. 그러다 광고 공모전에 출전해서 입상을 하게 된 거예요. 그 일을 계기로 방송국에 가게 됐는데 메이크업, 헤어, 의상 하는 일이 재미있어 보였어요.”라며 “그래서 메이크업을 공부했고 그쪽 일에 종사를 했지만 사람을 표현하는데 있어 한계를 느끼고 의상 디자인으로 전환해 16년간 공부를 한 겁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녀가 배운 모든 것을 한 곳에 접목해 만든 결정체이자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운명으로 다가온 LU&FE
대학생활 4년을 마치고 26살이던 어린 나이에 모회사에 입사해 스타일링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실무를 접했지만 기성 의류업계 구조와 환경에 아쉬움이 너무 커 프리랜서로 독립하게 된 김은정 디자이너는 32살이 되던 해에 ‘루페’를 설립하고 가시밭길에 뛰어들게 된다. 그녀는 “루앤페의 모체가 루페였어요. 루앤페는 말 그대로 럭셔리하고 페미니한 옷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명품은 기본은 충실하지만 예쁘지 않았어요. 그 이유가 고가의 옷을 사는 사람들은 유행을 타는 옷을 사지 않거든요. 오래 입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점을 극복하고 싶었어요. 질 좋은 고가의 옷이지만 유행에 맞고, 유행에는 거스르지 않지만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요.”라고 부연했다. 서두에 밝혔듯이 디자인을 하고 옷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경영을 모른 채 보낸 6년은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오빠의 선언은 김은정 디자이너에게 큰 약이 됐다. 그 사건(?) 이후 루앤페는 기업의 메뉴얼을 체계화시켜 인사부터 회계, 교육 등을 안정화 시켰다. 김은정 디자이너는 “개인적으로 저는 국내 컬렉션이나 해외컬렉션에 참가해 유명세를 타고 싶은 마음은 아직은 없어요. 물론 그런 제안은 수도 없이 들어오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사를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먼저 되어야 내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후배들이 더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녀는 “무엇보다 저의 소망은 돈이 많아야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는 것이에요. 또 누구라도 배우려는 의지를 갖는다면 디자이너가 될 수 있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그 잣대가 루앤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요. 디자이너의 길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백이면 백 모두 힘듭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란 껍데기에 불과해요. 자신의 꿈을 펼치다 결국 자본의 문제로 대기업에 편입된 경우를 많이 봐 왔어요. 큰 아픔과 고통에 대한 성과를 찾을 수 있는 디자인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루앤페 가족의 소망이기도 합니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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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FE는 고생을 함께 한 동료와 직원의 것
“우리 팀원들이 파견을 나가거나 하면 거래처에서 ‘상조회사’라고 일컬어요.” 이 말을 듣고 필자가 갸우뚱하자 김은정 디자이너는 “모두 검은색 정장 차림에 같은 옷을 입고 근무해서”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루앤페가 체계적인 팀원교육과 시스템을 갖춘 환경을 만들었다는 단편적인 예라고 이해하면 된다. 제품 생산 역시 30년 이상 경력의 장인匠人들이 하루 일정량의 제품을 생산하고 디자인팀·스타일링팀·교육시스템팀 등으로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여러 생산 공장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팀원이 루앤페가 가진 현재의 경쟁력을 말하고 있다. 이렇듯 남녀 20대부터 중장년층을 아우르는 제품을 생산해 내며 고객의 신뢰를 받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은정 디자이너는 “사업초기 함께 했던 동료 디자이너는 지금까지 생사고락을 함께해 준 은인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이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예술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민하지만 순수한 것 같아요. 우리 팀원들이 그래요. 잘잘못을 따지지 못하거나 물건 하나라도 누구의 것이라고 규정짓지 않는 습관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똑같아요. 주머니에 돈이든 무엇이든 좀 더 주려고 하고, 힘들 때라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게 생활하려고 애쓰죠.” 이어 “팀원 모두가 저에겐 소중해요. 동료와 팀원이 지금의 이 회사와 저를 만들었거든요.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 팀원들과 디자이너들은 모두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큰돈을 들여 겉포장을 하거나,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리가 할 일이 바로 디자이너가 일로써, 회사로써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니, 뜻이 같은 셈이죠.”라고 말했다. 얼마 후 자신들의 디자인으로 해외 판로를 개척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조만간 루앤페를 건저 낸 PSD를 훌쩍 뛰어넘는 야심작을 준비하고 있는 김은정 디자이너는 “지난 추석 때, 그동안 소원했던 오빠를 잠시 봤어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오빠가 아버지이자 제겐 평생 멘토의 역할을 해준 분이거든요. 아마도 3개월 후엔 좀 더 자랑스러운 여동생으로, 감사하다고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깊은 눈을 반짝였다. 힘든 시기가 왔을 때, 그녀가 가진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았고,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남 앞에서 무릎 꿇던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지난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에서 경영자로서, 또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그녀의 어깨 위에 올려 진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사자성어는 김은정 디자이너를 두고 하는 말일까.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말처럼, 그녀와 그녀의 동료, 팀원의 삶이 달콤함으로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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