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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스며든 예술의 사명과 흔적

<최헌기 崔憲基> 展 성곡미술관 | 2015년 05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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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은 2015년 첫 전시로 3월 20일부터 5월 31일까지 작가 최헌기의 화력 30년을 돌아보는 <최헌기 崔憲基>展을 개최한다. 지난 2009년에 시작한 중견중진작가집중조명전의 일환인 이번 전시는 작가의 데뷔 초기 작업으로부터 최신작에 이르기까지 총 40여점을 엄선하여 반회고적으로 선보인다.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치열한 자기 탐구 여정의 기록이나 다름없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깨어 있는 이성과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문화경계의 인생을 작품으로 표현
1962년 길림성에서 태어난 최헌기 작가는 비록 중국 국적이지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이산의 작가이다. 그는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회화와 설치 작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헌기 작가의 1990년대를 필두로 현재까지의 작품을 총망라하는 자리다. ‘초서草書’를 근간으로 한 작가의 독특한 ‘광초狂草’ 기법, 자발적인 붓질 그리고 오일 페인팅의 물질성으로 표현되는 감각적 에너지의 회화 및 설치 작품 등 총 40 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베이징 중앙미술원에서 수학한 재중교포 작가로서, 중국 문화권에서 예술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최헌기의 작품에는 자신이 살아온 중국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서 정체성의 혼란과 새로움에 대한 모색의 흔적이 드러난다. 따라서 최헌기의 작품은 수많은 해외 동포가 각각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느끼는 일종의 낯섦과 거북함 그리고 적응과 동화 과정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최헌기 작가는 현대사회에서 모두가 겪고 있는 현대화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아노미와 자신이 받아온 사회주의적 교육에 대한 회의와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통에 대한 향수와 동시에 현재의 예찬 그리고 새로운 문명에 대한 비판 역시 그의 작품의 주조를 이룬다.    

작가의 고민과 예술적 지향이 집약된 전시
최헌기 작가의 대부분의 작업은 자신의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자 확인, 또는 삶과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탐색을 모티프로 풀어낸 회화적 비망록이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 규명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는 일차원적인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시대정신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와 반성으로 이어진다. 또한 모호한 삶의 경계와 예술의 역할에 대한 작가로서의 지적고민을 통해 스스로에게 되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이러한 주제의식과 당대정신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회화적인 조건과 예술의 정의, 그리고 이들의 미래적 비전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1관에서 출발한다. 1관은 1990년 대 <자화상 시리즈>와 함께 작가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회화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예술관의 변화를 보여준다. 더불어 고전 액자를 오브제로 사용하거나 다양한 물질의 재료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전개한다. 전시 2관은 기존의 가치와 정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동시대의 현실과 당대정신과의 조화 속에서 다시 새겨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현실에 대한 비평, 그리고 서구 문화의 범람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시대를 표현한다. 어쩌면 최헌기 작가의 모든 작업은 곧 그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또한 그의 사유와 욕망, 비판의식이 꼿꼿하게 살아 있는, 잠들지 않은 영혼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애써 전복시켜나가며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일방적 정의와 기준, 해석에 반대해왔다. 이러한 예술과 삶에 대한 서사적 열정은 경계인으로 살아온 지난 역경을 반성적으로 극복하려는 변증법적 의지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한 역경을 돌아봄과 동시에 건강한 비전을 지향하는 그의 생활충동, 지식충동, 예술충동과 실천의지는 원초적 고향인 한반도라는 원형감정에 오롯이 담긴다. 이러한 원형감정은 그의 지난 고민과 예술적 지향이 요약된 미래적 태도이며 이번 전시를 통해 뚜렷하고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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